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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세 2.0, 자본이득세로 전환] 上
[편집자주] 조기 대선과 맞물려 숱한 정책 제안이 나온다. 미뤄왔던 정책 과제도 상당수다. 정책 과제 해결은 대한민국 '1.0'에서 '2.0'으로 가는 과정이다. 낡은 상속세, 인구구조 변화에 어울리지 않는 재정구조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정책 과제에 대한 대안을 제시한다.
"상속 자산 처분 시점에 과세를"…수면 위로 올라온 '자본이득세'
상속세 폐지-자본이득세 전환 해외 사례/그래픽=이지혜상속세 개편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1950년 상속세 도입 후 상속세 개편 논의가 지금처럼 활발했던 적은 없다. 기업 경영 부담뿐 아니라 중산층에 직접적 영향을 줄 정도가 됐기 때문이다. 공제 확대, 유산취득세 전환 등 아이디어는 다양하다.
한발짝 내딛는 것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지만 75년만에 개편인만큼 질적 변화를 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잖다. 상속세 범주 내에서의 '업그레이드'를 너머 자본이득세 도입을 통한 '전환'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캐나다, 호주, 스웨덴 등이 채택한 자본이득세
자본이득세는 상속 자산을 처분하는 시점에 과세하는 제도다. 38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4개국은 상속세 없는데 이들 국가 상당수가 자본이득세를 택하고 있다. 캐나다, 호주, 스웨덴 등이 대표적이다. 정정훈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은 지난달 브리핑에서 "상속세를 폐지했다는 것은 자본이득세로 전환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자본이득세는 징벌적 상속세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한 제도다. 부의 집중을 완화한다는 상속세의 기본 철학에도 불구하고 징벌적인 상속세 탓에 상당수 기업이 국외 이전을 검토하는 등의 부작용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글로벌 가구업체 이케아(IKEA) 창립자도 상속세 탓에 1982년 고향인 스웨덴을 떠나 네덜란드로 이주했다.
상속세는 고질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저평가)의 원인으로도 지목된다. 대주주 입장에선 상속 주식의 저평가가 상속에 유리하다. 주식을 상속한 대주주가 상속세를 내지 못해 주식으로 납부(물납)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이런 이유에서 상속세를 폐지하고 자본이득세로 전환하자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나온다.
OECD 주요국 상속세 최고세율/그래픽=김지영현행 상속세 체계에서도 자본이득세의 철학은 녹아 있다. 중소기업 등에 최대 600억원까지 상속 공제를 해주는 가업상속공제는 과세를 이연한다는 측면에서 자본이득세 구조와 유사하다. 국민의힘이 제안하고 더불어민주당에서 수용한 배우자 공제 폐지 역시 다음 세대로 과세를 이연하는 구조가 자본이득세와 닮았다.
임동원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자본이득세는 상속세 폐지가 아니라 전환이라는 관점으로 봐야 한다"며 "과세 체계 합리화 측면에서 장기적으로 자본이득세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대한상의, 현행 상속세 체계에 자본이득세 부분 적용한 방식 제안하기도
현재 우리나라는 피상속인(사망자)의 재산에 과세하는 유산세 방식이다. 유산세 방식에선 과세 기준점인 공제가 중요하다. 현재 일괄공제 5억원과 최저 5억원인 배우자공제가 가장 많이 활용된다. 공제는 1997년 이후 바뀌지 않았다. 정치권의 이견이 없는 배우자공제 폐지 등이 올해 국회에서 논의될 예정이다.
정부는 유산취득세로 전환을 꾀한다. 현재 관련법 개정안이 입법예고 중이다. 다음달 국회 제출이 목표다. 유산취득세는 각 상속인(유족)의 취득 유산에 과세하는 방식이다. 과세 대상은 실제 물려 받은 재산이다. 현재 상속세를 과세하는 OECD 회원국 중 20개국이 유산취득세를 도입했다.
따라서 올해 7월 나올 세법개정안이나 이후 정기국회에선 국회·정부안이 함께 논의될 전망이다. 논의의 장이 열렸으니, 이 기회에 자본이득세도 함께 논의해야 한다는 게 대체적인 제안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자본이득세를 현행 상속세 체계에 부분 적용하는 방식을 최근 제안하기도 했다.
한국조세정책학회장인 오문성 한양여대 세무회계학과 교수는 "자본이득세에 대해 사람들이 너무 앞서간다고 하는데 앞서가는 게 아니다"라며 "정치권에서도 자본이득세가 근본적인 해결 방법인지 알고 있으면서도 국민 정서 등을 핑계로 불합리한 제도를 유지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두 번 상속하면 회사 사라져" 엄살 아닌 이 말…'100년 기업' 안 보인다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이 2020년 당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공부모임 '경국지모(경제를 공부하는 국회의원들의 모임)'에서 한 말이다.
서 회장의 말은 엄살이 아니다. 현행 상속세 최고세율은 50%(최대주주 할증 적용시 60%)다. 가업상속공제를 받지 못한다고 가정하고 단순 계산하면 보유지분 100%를 상속받더라도 40%만 남는다. 한 번 더 이 과정을 거쳐 2세대가 지나면 지분율은 16%로 쪼그라든다. 경영권을 유지할 수 없는 지분율이다.
기업들은 현행 상속세제가 기업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한다. 당장 높은 세율이 문제다. 애당초 상속세가 과중해 비상장주식까지 끌어 써야 겨우 납부할 수 있는 구조가 문제라는 것이다.
실제 상속세 무게를 못 이겨 경영권을 넘긴 사례도 있다. 손톱깎이 업체 쓰리쎄븐, 밀폐용기 업체 락앤락처럼 국내 또는 해외 시장에서 1위를 달리다 상속세 부담으로 하향길로 접어든 기업들이 적잖다. 상속세라는 굴레에 갇혀 기업 경영의 연속성이 단절되다보니 '100년 장수기업'을 좀처럼 찾기 어려운 게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상속세는 주가 부양에 걸림돌로도 작용한다. 주가가 높아질수록 상속세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탓에 기업이 주가 부양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원활한 기업승계를 지원하기 위해 가업상속공제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복잡한 절차와 까다로운 요건 탓에 기업들의 효용성은 떨어진다. 2017~2022년 가업상속공제 연평균 이용건수는 105건, 총 공제금액은 2983억원에 불과하다. 가업상속공제가 활발한 독일의 같은 기간 연평균 1만434건, 총 공제금액 138억8000만유로(약 20조4000억원)에 턱없이 부족한 실적이다.
전문가들은 상속세 개편 논의가 시작된 만큼 자본이득세로의 전환도 테이블에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본이득세는 유산을 받는 때가 아니라 향후 매각할 때 가격 상승분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이다. 기업 주식은 경영권 유지를 위해 처분하기 곤란하고 비상장 주식은 거래가 어려워 현금화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상속 즉시 세금을 부과해 주식을 팔게 하는 것보다 세금 납부 시기를 처분 시점으로 미뤄 기업을 계속 운영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특히 현행 유산세 체제 아래 배우자공제나 가업상속공제 구조 역시 자본이득세와 비슷한 성격을 띄고 있다. 가령 가업상속공제 역시 기본적으로 가업재산 처분 시점까지 과세를 이연하는 성격을 가진다. 배우자공제 역시 피상속인 사망이 아닌 함께 자산을 일군 배우자가 사망할 때까지 과세 시점을 늦추는 성격을 띈다.
취득가액 계산도 마찬가지다. 자본이득세 체제 아래 피상속인이 생전 10억원에 취득한 부동산을 상속인이 물려받을 경우 피상속인 사망 당시 해당 부동산 가격이 7억원이든, 14억원이든 중요하지 않다. 피상속인의 취득가액인 10억원으로 상속인이 물려받기 때문이다. 이후 상속인이 해당 부동산을 처분할 시점에 부동산 시가가 15억원이 됐다면 자본이득 5억원(15억원-10억원)이 과세대상가액이 된다.
가업상속공제도 마찬가지다. 피상속인이 공장건물과 토지를 10억원에 샀고 사망 당시 100억원이었으며, 이를 큰 아들이 가업상속공제를 이용해 상속세를 한푼도 안 냈을 경우를 가정해보자. 피상속인 사망 후 5년 뒤(사후관리기간 충족) 큰 아들이 해당 부동산을 150억원에 매각했을 때 큰 아들은 50억원이 아닌 140억원의 양도차익에 대한 양도소득세를 내야 한다.
오문성 한국조세정책학회장(한양여대 세무회계과 교수)은 "자본이득세로 전환되면 상속세라는 세목 자체가 없어져 상속세는 제로(0)가 되겠지만 그게 법인세나 소득세 등 다른 세목으로 녹아 들어가기 때문에 전체 세수가 줄어들진 않는다"라며 "오히려 기존보다 세수가 더 늘어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속세 70%? 도저히 못 내" 고향 뜬 회사들…'자본이득세' 전환 이유
글로벌 가구업체 이케아(IKEA) 본사는 네덜란드에 있다. 이케아 창립자 잉바르 캄프라드는 1982년 고향 스웨덴을 떠나 네덜란드로 이주했다. 높은 상속세 부담에 국경을 넘었다. 당시 스웨덴의 최고 상속세율은 70%였다. 반면 네덜란드는 법인세와 상속세가 스웨덴의 절반 수준이었다.
높은 상속세에서 비롯된 '기업 엑소더스' 사례는 더 있다. 우유팩을 개발한 식품 포장기업 테트라팩(Tetra Pak)도 1981년 본사를 스웨덴에서 스위스로 옮겼다. 스웨덴의 제약회사 아스트라AB는 상속세 때문에 자녀들이 주식을 팔았지만 주가가 폭락하면서 결국 영국의 '제네카'와 합병했다. 지금은 영국에 본사를 둔 아스트라제네카가 됐다.
복지국가 스웨덴의 높은 상속세율은 기업인과 자산가의 이탈을 불렀다. 결과적으로 자국 기업들이 다른 나라에 가서 법인세를 내게 된 것이다. 스웨덴 정부는 기업들의 해외이전을 막기 위해 2005년 유산취득세 방식의 상속세를 폐지했다. 대신 30% 단일세율을 적용하는 자본이득세로 전환했다.
실제 OECD(경제개발협력기구) 38개 회원국 가운데 14개국은 상속세가 없다. 상속 관련 세금을 부과하는 국가는 24개국이다. 이 가운데 20개국이 유산취득세 방식을 쓴다. 대표적으로 △프랑스 △독일 △일본 △스위스 등이다. 덴마크와 영국, 미국만 우리와 같은 유산세 방식이다.
미국은 유산세 방식을 취하지만 고액 공제 기준이 높다. 일본은 최고세율이 높지만 고용·투자 등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기업승계 세제 혜택을 준다. 한국처럼 높은 세율과 최대주주 할증을 함께 적용하는 나라는 드물다. 유산세를 사용하는 국가 중 배우자 공제 한도를 설정한 나라도 우리뿐이다. 나머지는 한도 없이 전액 면제다.
스웨덴 이외에도 캐나다·호주·뉴질랜드 등이 자본이득세를 선택했다. 자본이득세는 일반적으로 '상속세 폐지'로 여겨지지만 실상은 상속세의 '구조적 개편'에 가깝다. 자본이득세는 유산을 승계받는 시점이 아니라 해당 자산을 매각해 실제로 이익을 실현할 때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이다. 과세 시점을 조정해 부담을 줄이자는 취지다.
1972년 가장 먼저 상속세를 폐지하고 자본이득세로 전환한 건 캐나다다. 호주는 상속세가 농민과 소규모 사업자의 사업승계를 어렵게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면서 1979년부터 상속세를 단계적으로 폐지했고 1985년 자본이득세를 도입했다.
싱가포르는 보다 급진적으로 상속세 체계를 전환했다. 2008년 최고 60%의 상속세를 전면 폐지했다. 경제성장과 고용확대를 위해 해외 자산가의 이주와 투자를 유치한다는 인식에서다. 실제 영국의 투자이민 컨설팅업체 헨리앤드파트너스(Henley & Partners)에 따르면 싱가포르는 지난해 기준 100만달러 이상 고액자산가 순유입 규모 3위(3500명)를 기록했다.
임동원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호주와 스웨덴 등 OECD 국가 중1/3은 자본이득세를 선택했다"며 "자본이득세는 상속세 폐지가 아니라 전환이라는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과세 체계 합리화 측면에선 장기적으로 자본이득세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자본이득세 전환이 진정한 '상속세 개편'…경제 활력 위해 필수"
"상속세 개편이 가야 할 방향은 결국 자본이득세입니다. 상속세를 자본이득세로 대체해야 기업과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습니다."
오문성 한양여대 세무회계학과 교수(한국조세정책학회장)는 16일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현행 상속세 체계의 문제점에 대해 비판하며 상속세를 자본이득세로 개편해야 한다고 밝혔다.
오 교수는 유산세를 유산취득세로 전환하겠다는 정부의 상속세 개편안에 대해 "기본 방향은 잘 잡았다"면서도 "자본이득세로 가는 중간 과정이 현재 유산취득세 도입이고 마지막엔 자본이득세로 가야 된다"고 말했다.
자본이득세는 개인의 사망과 무관하게 자본소득 실현 시 부과하는 과세 방법이다. 상속인이 사망한 사람의 자산을 그대로 물려받고 추후 그 자산을 팔았을 때 발생한 차익에 대해 소득세를 부과한다.
오 교수는 "스웨덴,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등은 자본이득세를 시행하고 있다"며 "자본이득세로 대체하면 가업상속공제 같은 것은 필요 없어지고 효율적인 나라가 된다"고 설명했다.
상속세는 개인에게 매기는 세금이지만 실질적으론 기업 오너 등 법인 승계에 가장 큰 영향을 준다. 가업상속공제는 기업 활동을 저해하는 요소 중 하나로 꼽힌다. 기업들이 상속세 마련을 위해 갑자기 배당을 늘리거나 사업부를 매각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자본이득세를 도입하면 대주주의 사망에 대비해 주가를 낮추는 경향도 사라져 개인 투자자도 많은 이익을 볼 수 있다.
오 교수는 상속세를 자본이득세로 대체해도 세수 확충엔 문제가 없을 것으로 관측했다. 그는 "우리나라 국세가 많으면 400조원인데 상속세는 그 중에서도 15조~20조원 규모로 비중이 높지 않다"고 말했다.
기업 활동을 저해한다고 여겨지는 증여세 문제도 해결된다. 오 교수는 "증여세 때문에 자금이 기업 투자 등에 쓰이지 못하고 물 밑에 숨는 경향도 있다"며 "자본이득세를 도입하면 증여세 떄문에 숨었던 돈들이 양성화되면서 세수도 많이 걷히게 될 것"고 말했다.
오 교수는 학계에선 자본이득세 논의가 활성화됐지만 국회, 정부 등에선 아직 논의가 활발하지 않다며 아쉬워했다. 그는 "자본이득세에 대해 사람들이 너무 앞서간다고 하는데 앞서가는 게 아니다"라며 "정치권에서도 자본이득세가 근본적인 해결 방법인지 알고 있으면서도 국민 정서 등을 핑계로 불합리한 제도를 유지하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오 교수는 이번 상속세 개편안 중 아쉬운 부분으로 배우자 공제 한도를 꼽았다. 그는 "배우자 공제에 대해 한도를 없애자는 얘기가 나왔지만 결국 10억원이라는 한도를 씌웠다"며 "배우자 공제의 한도를 없애더라도 실질적으론 배우자가 살아있을 때까지만 과세 이연을 해주겠다는 건데 이번 개편안은 별 효과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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